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/역대 후궁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보통 비빈들은 본명이 알려지지 않으나 《조선왕조실록》[* 실록에 후궁의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는 보통 후궁이 죄를 지어 언급 될 때가 많다.]이나 야사에 이름이 알려진 경우도 있다. * [[태조(조선)|태조]]의 후궁 화의옹주 김씨(김칠점선) * [[정종(조선)|정종]]의 후궁 숙의 기씨(기자재) * [[태종(조선)|태종]]의 후궁 서경옹주(금영)[* 이름이 금영인지 성이 김씨인지 금씨인지는 모름], 혜선옹주 홍씨(가희아)[* 기생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기명(예명)일 가능성도 있다.], 신순궁주 이씨(이정민)[* 《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》] * [[단종(조선)|단종]]의 후궁 숙의 권씨(권중비) * [[세조(조선)|세조]]의 후궁 폐소용 박씨(박덕중)[* 《조선왕조실록》] * [[성종(조선)|성종]]의 후궁 [[귀인 엄씨]](엄은조이)[* 《조선왕조실록》], [[귀인 정씨(성종)|귀인 정씨]](정금이)[* 《조선왕조실록》] * [[연산군]]의 후궁 폐숙의 이씨(이정이)[* 《조선왕조실록》], 폐숙용 장씨([[장녹수]])[* 《조선왕조실록》], 폐숙용 전씨(전전비)[* 《조선왕조실록》], 폐숙원 김씨(김귀비)[* 《조선왕조실록》], 폐숙원 최씨(최보비)[* 《조선왕조실록》] * [[선조(조선)|선조]]의 후궁 폐소원 윤씨(윤희 or 윤귀희)[* 《조선왕조실록》], 상궁 김씨(김개시)[* 《조선왕조실록》, 《계축일기》, 《공사견문록》, 《연려실기술》] * [[광해군]]의 후궁 폐수빈 허씨(허정순)[* 《선원록》], 폐귀인 윤씨(윤영신)[* 《계해정사록》], 폐소용 임씨(임애영)[* 《조선왕조실록》, 《승정원일기》], 폐숙원 한씨(한보향)[* 《한숙원전》] * [[인조]]의 후궁 상궁 이씨(이정민) * [[현종(조선)|현종]]의 후궁 상궁 김씨(김상업)[* 《조선왕조실록》][* 삼복과 간통했다는 혐의로 받아 유배를 갔다.(홍수의 변)] * [[숙종(조선)|숙종]]의 후궁 [[희빈 장씨]](장옥정)[* 《단암만록》] * [[장조]]의 후궁 [[숙빈 임씨]](임유혜)[* 《한중록》], [[경빈 박씨]](박빙애)[* 《한중록》] * [[정조(조선)|정조]]의 후궁 [[의빈 성씨]](성덕임)[* 《이재난고》] *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의 후궁 영보당 귀인 이씨(이순아), 광화당 귀인 이씨(이완덕)[* 《경향신문》], 복녕당 [[귀인 양씨]](양춘기), 삼축당 김씨(김옥기)[* 《조선일보》] * 가장 장수한 후궁은 중종의 후궁 [[희빈 홍씨]]와 연산군의 후궁 [[숙의 윤씨(연산군)|폐숙의 윤씨]]로 88살 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.[* 왕비 중 가장 장수한 신정왕후(83살)와 왕녀 중 가장 장수한 정명공주(83살)[* 태조의 딸 의령옹주은 생년미상이지만 1379년 생인 남편과 동갑내기 혹은 나이차이가 많이나지않는다면 의령옹주가 가장 장수한 왕녀가 된다.]와 비교해도 5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.][* 다만, 후궁은 생몰년이 기록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희빈 홍씨와 폐숙의 윤씨보다 더 오래산 후궁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. 이 두명과 비슷하거나 더 오래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후궁 중 한명이 선조의 후궁인 순빈 김씨이다.] 반대로 가장 단명한 후궁은 정조의 후궁 [[원빈 홍씨]]로 14살에 생을 마감하였다. * 자녀를 많이 낳은 후궁은 성종의 후궁 [[숙의 홍씨(성종)|숙의 홍씨]]로 10명(7남3녀)을 낳았고 태종의 후궁 [[신빈 신씨]]도 10명(3남7녀)[* 정빈 고씨의 아들인 근녕군이 신빈 신씨의 아들이 아닌것이 밝혀져 신씨가 총 2남7녀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《태종신도비문》에서 신빈 신씨가 3남7녀를 낳았고 정빈 고씨가 1남을 낳았다고 기록되어있다. 함녕군과 온녕군 외에 봉작을 받은 신씨의 아들이 없는것으로 보아 일찍 사망한것으로 보인다.]낳았다. 그 다음은 선조의 후궁 [[인빈 김씨]]로 9명(4남5녀)를 낳았다. * 후궁들 중 왕비가 되어본 적이 있던 후궁은 숙종의 후궁 [[희빈 장씨]]가 유일하며 6년간 왕비 자리에 있었다.[* 정현왕후, 장경왕후 등 후궁 출신 왕비들은 최종 지위가 왕비였음으로 제외][* 공빈 김씨의 경우 생전에 왕비가 되지 못하고 사후 왕후로 추존되었다가 다시 강등 당한 경우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.] * 간택후궁은 종2품 숙의부터, 승은후궁은 종4품 숙원부터 시작하는게 관례였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이 관례가 다 지켜지지 않았다.(ex. 영조의 후궁 [[영빈 이씨]][* 승은궁녀에서 종2품 숙의로 시작], 정조의 후궁 [[의빈 성씨]][* 승은궁녀에서 정3품 소용으로 시작],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[* 승은궁녀에서 종2품 숙의로 시작], 철종의 후궁들[* 승은궁녀에서 종1품 귀인 혹은 종2품 숙의로 시작], 무품 후궁들[* 입궁할 때부터 빈으로 책봉 *] 등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